벼랑 끝에 선 당신을 위한 단 하나의 동아줄: 국제 인권 변호사가 말하는 3가지 진실
안녕하세요.
차가운 법정의 공기, 무거운 서류 더미 속에서 희망을 찾는 국제 인권 변호사입니다.
가끔은 저도 사람인지라,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하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이 되겠다는 처음의 다짐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서곤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조금은 무겁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국제 인권법', 그리고 그 법이 지키려는 사람들, '난민'과 '인권 침해 피해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뉴스에서 스쳐 지나가는 딱딱한 단어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숨 쉬고, 웃고, 우는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죠.
이 글을 통해 당신의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어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한 뼘 더 따뜻해질 거라고 믿습니다.
1. '난민'이라는 이름표: 숫자가 아닌 한 사람의 절규
우리가 '난민'이라고 하면 보통 무엇을 떠올릴까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 혹은 왠지 모를 두려움과 경계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난민은 단순한 통계 속 숫자가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 낯선 땅에 내몰린,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국제법에서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정의합니다.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제1조 A(2))
말이 좀 어렵죠? 쉽게 말해볼게요.
당신이 어떤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단지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당신을 보호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위협하고 죽이려 든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난민입니다.
제가 만났던 '아미르'라는 친구가 생각나네요. (가명입니다.)
아미르의 고향은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전의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끌려가셨고, 얼마 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밤마다 총성이 들리고, 이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공포 속에서 아미르의 어머니는 남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브로커에게 넘기고 낡은 고무보트에 몸을 실었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며, 아미르는 옆자리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생의 손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낯선 땅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따뜻한 환대가 아니었습니다.
의심의 눈초리, 언어의 장벽, 그리고 언제 다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뿐이었죠.
이것이 바로 수많은 난민이 겪는 현실입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법에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농-르풀망(non-refoulement)' 원칙**, 우리말로는 **'강제송환금지원칙'**이라고 합니다.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토의 국경으로 어떤 방법으로도 추방하거나 송환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죠.
이는 국제인권법의 절대적인 원칙 중 하나로, 설사 그 나라가 난민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마치 불이 난 집에서 뛰쳐나온 사람에게 "너는 우리 집 사람이 아니니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인간 존엄에 관한 약속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원칙은 전 세계 곳곳에서 위협받고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논리에 밀려 인권의 가치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변호사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깊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난민은 '문제'가 아니라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것을 빼앗으러 온 침입자가 아니라, 단지 안전한 곳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진 평범한 이웃일 뿐입니다.
전 세계 난민 현황 인포그래픽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누군가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습니다.
1억 1,730만
2023년 말 기준, 전 세계 강제이주 인구
73%
대부분의 난민이 자국과 인접한 국가에 체류
40%
전 세계 난민 인구 중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
*자료: 유엔난민기구(UNHCR) Global Trends Report 2023
2. 눈 감아버리고 싶은 인권 침해의 현장: 당신의 침묵이 역사를 바꾼다
인권 침해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심지어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 고문과 비인도적인 처우, 아동 노동 착취, 인신매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그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인권 침해는 대부분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에 의해 자행되거나, 적어도 국가의 방관 아래 일어납니다.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 상상만 해도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죠.
저는 독재 정권에 의해 부모님을 잃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십 년간 싸워온 한 어르신을 대리한 적이 있습니다.
정권은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 사건을 조작했으며, 그를 '사회 불안 세력'으로 낙인찍었습니다.
국내의 모든 사법 절차는 이미 권력의 손아귀에 있었고,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포기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국제 사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 산하의 특별절차(Special Procedures)에 진정을 제기한 것이죠.
수년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유엔은 해당 정부에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진상 규명을 권고했습니다.
비록 이것이 곧바로 법적인 강제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 사회의 압박은 해당 국가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결국 몇 년이 더 흐른 뒤,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그는 공식적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의 사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국제 인권 메커니즘은 당장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강력한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진실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 되고,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당신의 고통을 알고 있다'는 강력한 연대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연대의 힘이 모여 결국에는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침묵은 거대한 악을 용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는 순간, 인권의 가치는 우리 사회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작은 관심과 목소리가 모일 때, 우리는 역사의 부끄러운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끝나지 않는 싸움, 국제 소송: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 바위를 깨는 물방울!
이제 가장 어렵고도 전문적인 이야기, '국제 소송'에 대해 나눠볼까 합니다.
국제 소송은 말 그대로 국가 간의 분쟁이나, 국가에 의해 자행된 심각한 인권 침해 범죄를 국제적인 재판소에서 다루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국제사법기관으로는 국가 간의 법적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등 가장 심각한 국제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각 지역별로 유럽인권재판소, 미주인권재판소 등이 존재하며, 특정 사건을 위해 설립되는 특별재판소들도 있습니다.
"변호사님, 정말로 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이길 수 있나요?"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말 어렵고 긴 싸움입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죠.
우선, 국제재판소는 '관할권'이라는 큰 장벽이 있습니다.
해당 국가가 재판소의 권한을 인정하겠다고 동의해야만 재판이 열릴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권 침해를 저지른 국가가 순순히 재판에 응할 리가 만무하겠죠?
또한 증거 수집도 매우 어렵습니다. 국가는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고, 증인들은 보복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소송 기간도 기본적으로 수년, 길게는 십수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비용도 천문학적이죠.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을까요?
국제 소송은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재판 과정에서 묻힐 뻔했던 진실이 드러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에게 '당신들의 범죄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냅니다.
설사 재판에서 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축적된 자료와 기록들은 역사의 증거로 남아 훗날 정의를 바로 세우는 밑거름이 됩니다.
작은 물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지면 단단한 바위도 뚫리는 것처럼, 국제 소송이라는 끈질긴 노력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정의는 더딜지라도, 반드시 온다는 믿음. 그 믿음 하나로 오늘도 전 세계의 인권 변호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4.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긴 글을 읽으면서 아마 많은 분들이 무력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거대한 문제 앞에서 나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세상의 모든 위대한 변화는 '나 한 사람'의 작은 시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첫째,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은 이미 가장 중요한 첫걸음을 떼셨습니다. 난민과 인권 문제에 대한 뉴스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 번 더 클릭해보세요. 관련 다큐멘터리나 책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무지가 편견을 낳고, 편견이 차별을 낳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둘째,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정부의 반인권적인 정책에 반대하는 청원에 서명하고, SNS를 통해 인권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모여 더 큰 울림을 만듭니다.
셋째, 연대하고 후원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비정부기구(NGO)들이 있습니다. 작은 금액이라도 정기적으로 후원하거나,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참여 방법입니다.
아래 기관들의 웹사이트를 방문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더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가 외면하지 않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벼랑 끝에 선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당신의 작은 관심과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잠시라도 지구 반대편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해주시길,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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